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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 마을서재 느루

사람책 많은 우리 마을에서 놀아요!-인천 in 기사

 

 

 

요리제빵- 학생들이 마을 빵집에서 빵 만드는 과정을 설명 듣고 있다.

 

 

서구 가좌동에 가면 ‘우리동네 문화복덕방’이 있다. 부동산이라고 하는 복덕방? 그렇다. 집을 사고팔 때 중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배우고 싶거나 궁금한 걸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책을 모으고 연결해준다. 마을 사람들은 이웃집 마실 가듯 슬리퍼를 신고 가벼운 마음으로 복덕방을 드나들고 있다. 문 연 지 10개월이 돼가는 이곳은 어느새 마을사람들의 의사소통의 공간이 되었다.


지난해 9월,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에 복덕방 간판을 내건 ‘우리동네 문화복덕방(이하 문화복덕방)’은 사람책 프로그램으로 문을 열었다. 마을n사람이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연장지원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

‘휴먼 라이브러리’라고 널리 쓰이고 있는 사람책은 말 그대로 사람이 책이 되는 것이다. 사람책은 책장에 책이 꽂혀 있듯이, 사람이 서가에 꽂혀 있는 책과 같다. 어느 방면에서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책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함께한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맛있는 요리와 요리 이야기를,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은 바둑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수다를 잘 떠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떨면 된다. 멍 때리고 싶다면 그것도 가능하다.


‘문화복덕방’에는 사람책이 꽤 많다. 골라서 읽을 수 있다. 무엇이든지 종이로 만드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페이퍼크래프트’, 여유로운 휴식을 선물받아 차 한 잔 하는 ‘일시정지’, 컴퓨터난 휴대폰 자판이 아닌 직접 펜을 잉크에 묻혀 써 보는 ‘잉크와 펜촉’, 할 일을 8시간 동안 집중해서 해 보는 ‘작심N일’, 요리사와 함께 요리를 해보는 ‘요리사람책’, 한땀한땀 바느실로 야생화를 피어나게 하는 ‘야생화자수’… 등등 마을 사람들은 누구든지 사람책과 함께할 수 있다. 현재 20개 정도 사람책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또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으면 사람책이 되겠다고 신청하면 된다.
 


      


- <인형극단> 프로그램. 마을사람들이 모여 직접 인형을 만들고 있다. 올 가을에는 직접 만든 인형으로 인형극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지난 가을 문화복덕방 문을 열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에 관심이 많은지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참으로 다양했다. 영화보기, 운동하기, 여행하기, 음악듣기, 들어주기, 수다떨기, 만들기, 드라마보기, 게임하기, 동물기르기, 요리하기, 잠자기, 걷기… 등등. 이밖에도 멍때리기, 외국어배우기, 뒷담하기, 간지 내기, 텃밭가꾸기 등 수십 가지가 사람책 관심항목에 들어 있었다.


사람책에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가게를 하는 사람도 있다. 빵집, 일식요리집 등에 있는 사람책을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 빵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고 빵 이야기를 듣는다. 일식요리집에서도 마찬가지. 말로만 듣는 딱딱한 수업이 아니라 직접 냄새도 맡고 맛도 보고, 무엇보다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어 좋다.


사람책 프로그램 가운데 ‘인형극단’은 참 잘되는 프로그램으로 손꼽힌다. 이곳에서는 현재 인형을 직접 만들고 극도 올리기 위해 준비가 한창이다. 그래서 오는 9월, 같은 마을에 있는 푸른샘도서관 10주년 행사에서 막을 올릴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인형극을 보면서 아이들은 얼마나 즐거울까. 아이들은 부모만 키우는 게 아니라 마을사람들이 키운다는 말이 맞아떨어진다.
 

이제 ‘문화복덕방’은 사람들이 복덕방 문을 드나들어 문턱이 다 닳았다. 돌쩌귀를 바꿔야 할 지경이다. 이처럼 마을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마을이 더 아늑해지고 사람들 마음은 더 넉넉해질 것이다.
문화복덕방에서 사람책들과 함께하는 권순정씨는 “대단한 사람들보다는 내 부모님, 친척, 이웃이 사람책이 되니 더 재미있다. 늘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멘토가 되니 더 정겹고 친화력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년에는 자유학기제가 시행된다. 그전에 청소년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보고 학생들이 함께할 사람책을 연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잉크와 펜촉> 프로그램 진행 모습. 뭐든 빨리 흘러가는 시대에 잠깐 아날로그로 살아보는 시간. 마을사람들이 펜촉에 잉크를 묻혀 글씨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