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작은도서관 마을서재 느루

느루에서 세상과 접속하다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에서 ‘세상과 접속하다’

 

www.neuru.org

 

 

우리 동네는 오래된 동네입니다.

 

우리 동네는 큰 가재가 천에서 살고 있었다는 유래가 있는 동네입니다. 그래서 옛 지명이 가재울이지요. 어느 동네에나 있을법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가좌동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인천에서도 구도심에 속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와 새로 지은 아파트, 빌라와 다가구주택이 섞여서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 장을 볼 수 있는 재래시장이 동네의 한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 동네가 좀 북적한 게 한 번 장보러 나가면 이웃을 많이 만나는 장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 옆에 SSM마트가 생겨서 시장이 좀 걱정이지요. 그리고 티타늄공장과 간장공장이 있어 공기가 별로 좋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4월엔 오래된 벚나무 아래서 동네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가을엔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가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학교가 11개나 있어 유흥가가 들어설 수 없다는 점입니다. 술집이라고 해보았자 대부분 가족단위로 여름밤 늦게까지 길거리 상가에 앉아서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는 정도이지요. 가좌3,4동으로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세월의 더께가 많이 앉아있습니다. 그 오래된 동네의 허름한 건물3층에 청소년인문학도서관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제안하고, 청소년들이 답하다 _ 갈 곳 없는 청소년, 아지트를 만들자.

 

학교가 11개나 있으니 청소년공간이 있을 법도 한데, 작년에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를 개관하기 전까지는 동네공원에 농구장 1개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장장 3년을 관청에 제안하고 건의했었지요. 그러나 만들어지기가 쉽지 않았고, 고민 끝에 결국엔 동네사람들이 나서게 된 것이지요. 푸른샘어린이도서관(이하 푸른샘)을 민관협력으로 만든 경험이 있으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두들 용기를 낸 덕에 결국엔 청소년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뿌리는 푸른샘인데요. 푸른샘에서 운영했던 <나를 찾아가는 여행> 돌봄학교 아이들을 청소년이 되면 동네에서 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서 고민을 시작했었습니다. 어린이도서관이라 청소년이 된 친구들은 점점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고, 사업으로 만난다는 것 역시 한계가 있었지요. 그래서 결국엔 '공간'을 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입니다. 동네에 사는 보통의 사람들이 '동네 청소년이 갈만한 데가 없으니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아요'란 말이 엄청난 씨앗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었지요. 2008년부터 그렇게 고민하고 말씨앗 만들고 하다가 아름다운가게가 마련해준 풀뿌리활동가 쉼을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제주에서 청소년공간만들기에 관한 소박한 결의를 하면서 길을 걸었었지요. 그 이듬해엔 부산 <인디고>에 다녀왔고, 광주 청소년인문학까페에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청소년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였습니다. 울산의 <품&페다고지>의 사업도 보았고, 도봉의 <품>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많이 보고 생각하면서 우리 동네의 아이들과 준비하는 어른들의 역량을 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2010년부터 기금 모으기에 들어갔고, 동네의 6개 중학교에 1200명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학교에 세 번 이상 방문해서 설문 의도를 말씀드린 결과 설문지도 학교에서 복사해서 쓸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1179명의 청소년들의 설문조사서가 걷혔고, 동네엄마들이 바를정(正)자 표시를 해가며 통계를 냈지요. 아이들은 청소년공간에 대한 열망을 50개가 넘는 아이템으로 제시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공간을 함께 만들겠다는 아이들이 96명이나 자기 전화번호를 남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청소년들과 공간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자금도, 공간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단지, 청소년공간에 대한 열망과 상상력, 그 두 가지가 우리에게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무것 없어도 우리는 꿈꾼다 _ 우리 공간, 우리가 디자인한다.

 

아흔 여섯 명이나 전화번호를 남겨주다니, 어른들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오리엔테이숀 날짜를 잡았고, 실체도 없는 공간에 대한 디자인을 상상하자는 계획을 세운거지요. 오티에 60여명의 아이들이 왔고, 어른들은 ‘왜 청소년공간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지’ 그동안의 과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들은 첫 만남에 서먹해 하고 말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점차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 풀어놓았던 말들이 지금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공간, 우리가 디자인한다>는 도서관건축학교를 열었습니다.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덕택에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담긴 도서관디자인이 다섯 개나 나왔습니다. 그 디자인이 지금의 느루에 그대로 앉혀진 겁니다. 그리고 청소년운영위원회 제1기가 꾸려졌습니다. 아이들은 청소년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민주적인 회의와 합의, 결정과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청운위는 학생자치기구의 성격을 가지고 되었고, 민주시민으로서의 훈련을 일상생활에서 하게 된 겁니다.

 

어른들은 열심히 동네사람들의 생각을 모아나갔습니다. 2010년 6월에는 서구도서관을 빌려서 주민들과 청소년공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토론회를 벌였고, 그 해 10월에는 후원행사를 했습니다. 여덟 명에서 출발했는데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200여명 이상이 함께 해주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동네 어르신들이 공간을 얻을 씨앗자금을 분담하여 마련하셨고, 후원행사에 500여명 넘는 동네사람들이 참여해서 드디어 공간을 얻을 씨앗자금이 생긴 거지요. 전기공사와 마루가 기부금으로 놓아지고 2000여권의 책이 인천의 한 노동조합의 기금으로 마련되었습니다.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 거지요. 누구도 끝을 바라보고 달려오지 않았고 과정 속에 정성을 다하여 주민을 만나고, 토론을 하고, 기금을 모으는 대로 공간을 꾸며나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럿이 상상한대로 현실에서 나타나게 된 것이지요. 이 모두 동네청소년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소통하면서 성장해보자는 마음들이 모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 그리고 변화해보려는 마음의 집단적인 결집이 과정을 거쳐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느루에 오면 빵을 구울 수 있나요? 진짜요?

 

드디어 아이들이 직접 선택한 공간에, 아이들이 상상한 디자인이 앉혀지고,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푸른샘도서관에서 모임을 가졌던 아이들은 느루에서의 청소년운영위원의 첫 회의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마루바닥에 대자로 누워 등을 비비적대며 ‘와!! 정말로 우리가 도서관을 만들었어요!’, ‘정말로 이게 되었네요!’하고 외쳤으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도서관 현관이며 벽이며 어떻게 꾸밀까 <두근두근, 현관프로젝트>를 하는 등, 많은 일들이 청소년 스스로의 힘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아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동아리 활동을 얘기하면 느루 사무국에서는 동네에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어른을 찾아서 아이들과 연결해 주고 있습니다. 처음에 기타동아리가 그렇게 해서 생겼지요. 기타치고 싶은 아이들이 모였고, 지역사회와 함께 이야기를 해서 동네 성당에서 기타를 잘 치는 멋진 선생님을 모셔오게 된 거지요. 필요와 요구에 의해 아이들은 동아리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고, 결합하는 선생님에게는 동네청소년을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마련이 된 겁니다. 만화동아리도 그렇게 만났고, 가좌고등학교 토론동아리인 토론열전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지난주 찾아온 아이들은 빵 굽는 사람들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느루에 오면 빵을 구울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요. 진짜예요?’하고 눈알을 굴리며 묻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 장짜리 계획서를 쓰게 했지요. 동아리이름, 언제 하고 싶은지, 빵을 굽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아이들은 세미나실에서 머리 맞대고 앉아 제법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며 계획서를 완성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아이들과 함께 빵 굽는 일을 해 줄 동네빵집을 연결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한 명 한명의 아이들 속에 숨은 꿈을 스스로 발견하게 할 수 있는 마당이 느루의 역할입니다. 청소년들이 처음부터 이 공간을 같이 만들었으니, 느루의 주인은 청소년이고 찾아오는 아이들도 금방 이 공간의 쓰임새에 익숙해지고, 곧 주인이 되어갑니다. 그 결과로 도서관을 함께 운영하겠다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지요. 지금은 시네마톡, 수채화, 通기타, 청운위, 바카라파티쉐 등 아이들 스스로 만든 열 개의 동아리가 자발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답니다.

 

느루, 학교와 친구가 되었어요

 

인문학도서관으로 출발한 느루에 지역사회 학교가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동참을 했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학교와 연계사업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느루 바로 앞에 있는 가좌고등학교와는 아예 창체협약식을 맺었지요. 동네의 재능을 가진 분들이 아이들과 1년 동안 배우고 노는 프로그램입니다. 요리하는 사람, 네일아트하는 사람, 빵을 만드는 사람, 컴퓨터그래픽을 하는 사람, 토론을 즐겨하는 사람, 원예테라피를 할 수 있는 사람, 커피를 내릴 줄 아는 사람, 시나리오를 쓸 줄 아는 사람, 다문화 탐험을 할 수 있는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아이들과 한 달에 두어 번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 네 개의 동아리가 꾸려졌답니다. 아주 넓다고 생각한 도서관공간은 동아리활동이 있는 날이면, 북썩북썩 아이들의 열기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렇게 동네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누고 함께 배우고 노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긴 겁니다. 정기회의로 동아리피드백회의를 하고 있으며, 가좌고의 선생님도 회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네 중학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동아리는 <나와 세계>라는 주제로 사진,자화상,식물,영화,다문화,청바지경제 등으로 흥미로운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만 느루 공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서관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오래된 건물에 급반전의 산뜻하고 예쁜 공간이 생겼으니 어른들도 참 좋아합니다. 달달한인문학모임, 일본어모임 등이 생기고 엊그제는 동네합창단까지 생겨서 책읽기와 노래부르기로 소소한 삶의 즐거움들을 찾고 있답니다. 앞으로 예술가들과 함께 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으니 동네에서 더 재미있게 놀겠지요?

 

카페가 있는 청소년 공간 _ 토요일엔 청소년이 운영해요.

 

아, 그리고 느루 옆에는 아담한 까페 <사람사이>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공간디자인을 할 때 꼭, 카페도 있어야 한다는 제안으로 어렵사리 마을기업으로 만들어진 카페입니다. 이 공간에서는 공정무역커피와 집에서 직접 만든 빵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기본가격이 저렴한데다 청소년들은 1,000원을 할인하고 있으니 청소년 카페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한 겨울에도 얼음이 가득 들어간 레몬에이드를 한 잔 시켜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카프라 게임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도 하지요. 특이한 점은 토요일에는 청소년들이 카페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평일에는 동네의 엄마들 네 분이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옆에 카페가 나란히 붙어 있으니, 아이들은 그저 신납니다. 동네아지트가 생긴 거지요. 가격 싸지요. 실컷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지요. 원하면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을 할 수 있지요. 느루에서 책을 볼 수 있지요. 어른들과 소통할 수 있지요. 요즘은 초등학생들까지 세미나실 하나를 전세 내어 매일 드나드는 모임까지 생긴걸 보니, 넓은 60평 공간이 앞으로 좁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느루의 주인이 되어 공간을 채워가고 있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있어질지 궁금합니다. 느루를 사랑하는 동네의 학교선생님들이 늘어나고, 부모들이 나서서 자원봉사를 하는 분위기로 점점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날들입니다.

 

동네와 소통한다는 것, 참 신기합니다.

 

청소년운영위원 1기가 1년간의 활동을 마쳤던 지난 2월에 쫑파티가 있었습니다. 돌아가면서 그간의 활동에 관한 소감을 나눴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말은 ‘태어나서 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이 많았다.’ ‘동네어른들과 소통하면서 지냈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서 참 좋다’ 등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자기소감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2기로 들어온 아이들과 친해지고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하는 어른들은 감동을 받았지요. 처음엔 청소년을 어떻게 만나 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도 참 많았습니다. 질풍노도의 10대들과 어른들이 어떻게 소통하며 함께 성장을 할 수 있을지, 세상에 발을 디디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으며, 수능과 대학만이 목적이 아니라 진짜 공부의 즐거움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염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함께 만들고, 그리고 함께 채워나가는 과정을 스스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책을 손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억지로 책을 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기의 이유가 생기면, 스스로 방법을 찾습니다. 느루는 그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노라고 일상생활에서 함께 몸으로 겪을 뿐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서로가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공간입니다.

느루는 세상과 소통하는 연결고리입니다.

 

느루는 청소년들이 성적경쟁에서 벗어나, 동네에서 벗을 만나고 우정을 키워나가는 장입니다. 서로를 돌보고 배려할 줄 아는 곳입니다. 새로운 만남에 늘 열려있으며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장입니다. 자유로운 상상을 함께 모아서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맘껏 꿈꿀 수 있는 곳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장입니다. 나의 삶과 더불어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입니다. 다양한 활동을 민주적 결정과정 속에 합의하고 실천하고 더불어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해 나가는 장입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대견한 성인으로 성장하고 다시 마을을 돌 볼 수 있는 건강한 순환체계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른도 함께 성장하고, 마을도 함께 성장하는 훌륭한 가치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함께 행동하는 느루는 항상 청소년들로 시끌벅적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있어질까요?

 

 

<사진: 가좌재래시장을 모델로 만든 그림책 '예샘이 시장에 가다' 출판기념의 자리>